【시집, 발표詩】/발표詩

보슬비 외 2편 (한국문학세상 2021년 봄 여름호)

이제민 시인 2021. 4. 28. 11:57

 

 

보슬비

이제민

촉촉이
보슬비 내린다

숨죽인 풀꽃에
속삭이며 내리는 고마운 단비

코로나19로 힘든 나날
아픈 상처 어루만져주고
서로 보듬어주며 견뎠던 시간
새싹 움트듯
산뜻이 기지개 켜며
설레는 기다림, 보슬비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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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21년 봄·여름호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직한 용재공(慵齋公) 이종준(李宗準)

이제민

의성현령(義城縣令) 지낸 후
모처럼 사우(士友)와 바둑을 둔다

부친께서 심은 은행나무 집 가리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금호고사(琴湖高士)의 집’이라 했단다

1498년 무오년(戊午年) 혼란한 정국
사화(士禍)에 연루되었다고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난 금오랑(金吾郞)

짙어가는 푸르른 은행나무 아래
삼매경에 빠져 바둑을 두는 용재공
주변에서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도착한다고 알리니
“아직 나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듣지 못했다”
꿋꿋이 바둑을 둔다

명을 받고
노모(老母)께 하직 인사 올리니
"피하지 말고 의롭게 맞으라!"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여기며
담담히 당부하신다

국문(鞫問)에도 흐트러짐 없이 임하고
귀양 가는 도중 충성스러운 안타까운 심정
‘고충자허중불여(孤忠自許衆不與)’*) 시 한 구절 인용했는데

다시 압송되어 이듬해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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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충자허중불여(孤忠自許衆不與) : 고충(孤忠)을 스스로 허여하여 중인(衆人)과 어우러지지 않도다.
중국 송나라 이사중(李師中)이 바른말을 하다가 귀양 가는
당개(唐介, 송나라 강릉 사람, 1010~1069)를 송별할 때 지었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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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21년 봄·여름호

 

 

잠 못 드는 밤

이제민

잡념을 내려놓으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생각

 

숫자를 세고 별을 헤아려도
적막한 그리움은
오히려 쓸쓸하게 다가온다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스르륵 잠이 든다

다음날 일어나니
전날 밤 기억은 희미하고
뻐근한 몸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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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21년 봄·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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