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대국夫婦對局
-도월화* 수필집 『여월여화如月如花』 중 「부부 대국」을 읽고 나서
이제민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 대국
흑 9점 화려하게 놓고 두었네.
만방으로 깨지니 남편이 말하기를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
두 집 내기 쉬운 네 귀를 중심으로
겨우 두세 집 짓고 나면
외곽 쌓아 숨통을 조여오는 당신
중앙은커녕 옆집 마실갈 길도 끊어지니
싸워보지도 못하고 불계패하고 말았네.
보다 못한 남편이 말하기를
‘공격은 최상의 방어’다
공격해 보지만 워낙 강적 앞에서 맥도 못 추고
죽은 흑돌 시체가 즐비해
빚쟁이 신세가 되고 말았네.
고수하고 대국하는 게 영광으로 생각하고
양말을 빨아 대령하라는 당신
갖가지 주문을 해댄다.
주말에는 옆집 부부와
연기連琪***를 두었네.
남편끼리 실력이 비슷하고
우리 여자끼리 실력이 비슷해서
서로 어울리는 바둑
아내들이 엉망으로 만들면
남편들이 좋은 상황을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에
참았던 웃음 폭발하고
한밤중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바둑을 두었네.
여러 가지 바둑 격언 동원한 남편의 지도
7점 두는 바둑으로 성장하였네.
내 생전 백돌을 잡는 야심은 애당초 없지만
네 귀에 흑 네 점 소박하게 놓고 둘 수 있는
날이 오면 남편에게 숙성된 포도주 한 병과
예쁜 꽃 한 송이를 선물하리라.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 한 장과 함께.
*도월화 수필가 :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전 중등교사(사회과). 창작수필 등단(2000).
수필집 『여월여화(如月如花)』(2007, 선우미디어). 수필넷 : http://cafe.daum.net/essaya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 바둑에서 격언 중 하나.
자신이 먼저 안정이 되고 나서 상대방을 공격하라는 뜻이다.
***연기(連棋) : 바둑을 둘 때, 겨루는 쌍방이 각각 복수(複數)로 편을 짜고 교대로 착수해 나가는 것.
같은 편끼리 착수에 관해 서로 의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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