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발표詩

슬픈 날에는 외 2편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이제민 시인 2009. 9. 14. 19:29

 

 

 

 

 

슬픈 날에는

이제민

슬픈 날에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떠나고 싶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 밤, 혼자라도 좋다.

슬픈 날에는
열차에 몸을 맡긴 채
한없이 달리고 싶다.

긴 의자에 잠시 쉴 수만 있으면
이 밤, 남쪽 끝이라도 좋다.
아무나 만나도
차 한 잔을 건네며
스스럼없는 얘기를
이 밤, 함께 해도 좋다.

짧은 여행이 되더라도
되돌아온 나의 일상엔
큰 이정표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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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자유인

이제민

비가 오면
가슴 속에 묻어 둔 사람
우산을 쓰고
내 집 앞에 서 있네요.

눈이 오면
추억 속에 간직한 사람
눈꽃을 훨훨 날리며
내 집 앞에 서 있고요.

하루쯤
자유인이 되어
비가 오면 함께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눈꽃을 날리는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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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며

이제민

퇴임 후 고향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소통을 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

시골 봉하마을에서
쇄도하는 방문객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
손녀와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모습
농촌 들녘에서
동네 주민과 막걸리를 마시던 모습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여생을 농촌에서 편안히 보내겠다던 소박한 꿈
그러나 그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도 괴롭다고 말할 수 없고
외로워도 외롭다 말하지 못한 심정
운명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노 전 대통령님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유서에 남기신 평소 소박한 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가시는 길이라도
부디 마음 편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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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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