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발표詩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한밤중 외 2편 신인문학상 당선소감, 심사평

이제민 시인 2005. 11. 29. 01:50

 

한밤중

이제민

바람소리조차도
잠이든 한밤중
늘 깨여있네

조그만 방안
코끝으로 스며드는 커피향
그리움 못잊어
너에게 달려가네

너는 언제나
모든 걸 포용하는
천사 같은 마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가깝고도 먼 그대

언제나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새벽이 되도록
그대의 꿈을 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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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제2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이제민

반상 위에 두개의 작은 병정들
내 마음의 고뇌가 시작되네
손끝마다 힘이 넘쳐
사색은 시작되네

한 병정이 내 마음을 뒤흔들면
내 마음은 점점 하늘로 용솟음치네
그때마다 하나 둘 고통스런 병정들
고민과 아픔이 시작되네

머릿속엔 허전한 빈 공간뿐
아무리 찾아봐도 부족한 병정들
만회하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어
최선을 다할 뿐……

병정들은 가로 세로 줄지어
아름답게 서있지만
이 마음은 후회뿐
할 말은 많아도 고개만 숙일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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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바둑세계』 1990 2월호 「독자의 난」
·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제2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거미

이제민

19층 고층 아파트에
몸짓이 왜소한
거미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실타래처럼 얽힌
미로를 만들어 놓고
먹잇감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머리 나쁜 곤충들
위협을 느끼지 못한 채
날갯짓하기에 여념이 없다
거미의 포위망이 온몸을 누르자
그제야 눈치채는 곤충
사는 길을 외면하고
죽는 길을 스스로 택하고 마는
가엾은 곤충
뒤늦게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지만
몸은 더욱 굳어만 가고
그것을 지켜본 거미는
얄미운 침을 넌지시 흘려보낸다

19층 고층 아파트엔
어느새 몸짓이 뚱뚱한
거미 여러 마리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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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제2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당선소감

 

이제민


그동안 습작으로 써오던 시가 계간 「문학세상」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잔잔하던 바다가 마치 파도가 치듯 내 마음에도 서서히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그것은 당선이라는 기쁨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시작 때문일 것이다.

기우(棋友)들과 바둑을 둔 후 국후담으로 바둑시도 쓰곤 했었다. 바둑은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바둑 한판에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어서일 게다. 바둑에는 승부에 대한 적당한 긴장감과 짜릿한 박진감, 사활·행마·패 등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바둑에 대한 묘미가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원동력이 시심(詩心)을 키우게 되어 당선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사납고도 혼란스럽게 친 파도도 시간이 지나자 잔잔한 물결로 햇살에 반사되어 고운 빛깔로 수놓는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한 광경을 마음에 꼭꼭 담아두어 작품활동을 해야겠다.

끝으로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계간 「문학세상」을 안내해준 도월화 선생님, 한남기우회 회원님들, 여러 지인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하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부문] 심사평

투명하고 올곧은 문학인을 배출하여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지가 되고자 오직 의로운 양심과 정식한 희망으로 힘차게 항해하는 계간 문학세상의 제2회 신인상 수상으로 21세기 한국문단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네 분의 신인상 수상자에게 먼저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이 순간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자들이 시인을 꿈꾸며 눈물겨운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오늘 수상의 주인공이 되신 네 분의 시인들도 수많은 시간과 세월을 시인의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다. 더불어 이제부터는 시인의 이름으로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준엄한 문학적 진리를 늘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담아 두길 바란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부분 나름대로 시적 전달력과 응축력이 잘 표현된 음조(音調)의 흐름과 사유적(思惟的) 서정성이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윤재의 '6월에 시를 쓰면' '꽃꽂이' '사랑한다는 것은' 등 6편의 작품은 정감이 넘치는 문장력으로 감동적 휴머니즘의 시 세계로 전환시키는 생성력이 있으며 시의 예술적 효용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민의 '거미' '한밤중'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등 10여편의 작품은 주변의 삶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자연의 소리를 듣고 볼 줄 아는 타고난 문학의 예리함과 서정성이 돋보인다.
이금례의 '더러는 잊고 살 일이다' '삶의 함성' '어머니, 어머니' 등 10여편의 작품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린 구도자의 모습과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가슴 깊이 일깨우고 있으며 인간의 근원적 속성을 역동적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이인옥의 '건널목' '행복이란' '불꽃놀이'등 10여편의 작품을 통하여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는 투명한 시적 세계를 영혼 깊이 길러내는 문장력이 박수를 보낸다.
모쪼록 문학세상을 통하여 시인의 이름으로 탄생하신 네 분은 이제부터 기교를 앞세우기보다는 맑고 투명한 영혼의 시로서 문학세상을 더욱 빛내 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 윤원희, 피기춘, 박종학, 이희석)

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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