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수필, 글

커피숍에서 생긴 일 1

이제민 시인 2005. 4. 25. 14:47

커피숍에서 생긴 일 1

 

 

  토요일 오후. 날씨도 무척 화창한 봄날이라 어디 놀러 갈까 망설이다가 친구나 불러내기로 마음먹었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일단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커피숍에서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연인끼리 같이 온 듯했다. 그런데 우측에 한 여자 분이 혼자 앉아있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오지 않고 마음은 점점 초조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내 처지를 한탄하며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직도 혼자였다. 그녀는 자꾸 시계를 보았다. 나도 따라서 시계를 보게 되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늦는가 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내 점점 굳어지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어느덧 씁쓸한 커피를 다 마시고 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커피숍을 나와 맑은 하늘을 보며 ‘후유!’하고 한숨을 길게 내셨다. 이제 어디를 갈까?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냥 집에 가기도 그렇고 혼자 빈둥빈둥 돌아다니기도 뭐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여자 분이 커피숍에서 나왔다. 약속한 사람이 안 왔는지 혼자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 자리를 뜰 생각이 없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왠지 나도 모르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밝은 꽃무늬 옷을 입고 있었고, 가냘프고 흰 피부가 이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눈에는 약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그녀를 바라본 내 시선을 거두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아까 커피숍에 혼자 계시던데 못 만나셨나 보죠?”
  “…….”

  그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다시 말을 건넸다.

  “저도 그 커피숍에 있었는데, 친구가 안 나와서 이렇게 되었어요.”
  “네.”

  그제야 그녀는 짤막한 한마디 대답을 하고 눈에 눈물을 감추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누굴 만나기로 하셨는데요?”
  “…….”
  “혹시, 애인 만나기로 했는데 안 나왔나 보죠?”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무슨 슬픈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일일까 나도 모르게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커피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동의를 했다. 속상한 마음에 아마도 말동무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커피숍에서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고이 간직한 영화 같은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3년 전 한 남자를 만나서 사귀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몇 달 전에 선을 봤지 뭐에요. 자기는 안 보려고 했는데 중매선 사람이 자기 상사라 거절을 못 하고 해서 그냥 보기만 마음먹었대요.”
  “네. 지금도 계속 만나나 보죠?”
  “한두 번 만나다 보니 호감이 들었나 봐요. 선을 본 그 여자도 싫은 눈치는 아닌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그녀의 눈은 어느새 창가를 향하고 있었다. 나도 따라 창문을 내다봤다. 차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달리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앞에 앉은 여자 분과 장면이 겹쳐 혼란스러웠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있었는데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도 그에게 전화해서 만나기로 했는데, 안 오는 것을 보니 이제는 헤어지려고 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 보죠?”
  “아네요. 안 나온다고 했어요. 이제 제가 필요 없나 봐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했어요. 아니, 헤어지려고 마음먹었어요. 저 싫다는 남자 안 붙잡을 거예요.”

  그녀는 배신감을 느꼈는지 힘을 주면서 말했다. 온몸이 전율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물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자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다린 것이 제가 바보인가 봐요. 안 나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시간을 기다린 제가 멍청하죠. 안 그래요?”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런 슬픈 일을 직접 듣게 되다니, 그녀가 너무 딱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제가 처음 보는 분에게 죄송해요. 이런 얘기를 다하고 말에요.”
  “아네요, 괜찮아요. 사실 저도 궁금했어요. 아까 커피숍에서 혼자 계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말에요.”
  “친구 분 못 만나서 어떡해요?”
  “뭐, 할 수 없죠.”
  “그럼, 오늘 뭐 하실 건가요?”
  “글쎄요. 아직 계획 없어요. 아차, 그러고 보니 성함도 안 물어봤네요?”
  “후후! 그러네요. 저 선영이에요, 박선영.”
  “네. 이름도 예쁘네요. 저는 김진수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통성명을 나누고 나자 그녀는 이제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미소도 살짝 띄워 보였다. 그토록 어둡던 모습이 조금은 나아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