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발표詩

겨울 바다 · 1, 장군 멍군

이제민 시인 2005. 11. 29. 01:43

 

겨울 바다 · 1

이제민

사랑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방황의 뒤안길
슬픈 그림자를 잊은 채
겨울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요히 잠들 뿐
벗이 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이 불면
먹구름이 몰려와
성난 파도에 휩싸여
수면 위로 떠오르는
슬픈 사연들

지난 세월을
수평선 너머로 날려 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현실 속의 또 다른
삶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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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하이텔바둑동』 창간호
·월간 누리 시문학 2006년 12월호



장군 멍군

이제민

무더운 여름날 동네 어른들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아침부터 장기판이 벌어졌네.

포로 진지를 정비하고
차로 정찰을 시켜
병졸이 적진을 향해 진격하네.

모시옷에 부채 들고
더위도 잊은 채
'박가야 마장 받아라.'
'이놈아 포장 받아' 수담 속에

어느덧 훈수꾼들이 몰려와
'장이야' 하면
'멍이야' 응수하며
춘추전국의 열기기 깊어만 가네.

일진일퇴의 상황 속에
초나라 항우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고목나무 매미울음이
위급한 전황을 알려주고

더위에 지쳐 헐떡이는 삽사리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먹고
곰방대의 담배 연기에
하늘 저편엔 뭉게구름이 일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곁들이는 세월 이야기.

산 너머 저편에
한줄기 소나기가 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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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하이텔바둑동』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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