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발표詩

소래포구에서 외 1편 (한국문학세상 2009년 겨울호)

이제민 시인 2009. 12. 24. 09:35

 

 

 

 

 

소래포구에서

이제민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포구 위 철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간혹 이어지고
철교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개발이 봇물처럼 일어나
바다 물길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시장엔
농어, 전어, 꽃게로 상인들 활기로 넘쳐나고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한 어느 늦여름 토요일 오후
싱싱한 회를 먹으로 온 사람들
즉석에서 이것저것 흥정하고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인다.

바닷물은 점점 들어오고
소금기에 찌든 비린내는 술기운에 녹아들고
개펄에서 먹이를 찾아 먹던 괭이갈매기
힘찬 날갯짓하고
정박했던 고깃배도 출항을 준비한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북적거리던 인파도 떠나고
멀리 보이는 불빛은 고요하기만 한데
횟집에서는 여전히 늦여름의 이야기꽃을 피운다.
소래포구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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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겨울호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 3

이제민

네모난 바둑판 361로路의 길
너와 내가 마주 앉아
반상의 여행을 떠난다.

서로 보듬어 주기도 하고
때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겨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게임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지만
반상의 길은
한번 간 길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 나름대로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파도가 치고 폭풍우 몰아칠 때면
임시 숙소에 웅크리고 앉아
고뇌에 잠긴다.
소중한 병정들을 떠나보내며
슬퍼할 겨를이 없이 가야 한다.
재충전해서 다시 길을 가야 한다.

승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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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