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수필, 글

커피숍에서 생긴 일 4 (완결)

이제민 시인 2005. 4. 25. 14:51

커피숍에서 생긴 일 4

 

 

  우리는 공원을 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술집 골목에는 젊은 사람들이 술을 먹었는지 같은 일행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더욱 꼭 잡았다.

  “괜찮아요.”

  나는 일단 그녀를 안심을 시키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단지 이곳을 벗어나려고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시내 중심까지 걸어오자 그녀는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더는 막을 수가 없어서 택시를 세웠다. 그녀를 태우고 나서 나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극구 말리지는 않았다.
  한 10분 정도 있으니 그녀가 다 왔다고 했다. 우린 택시에서 내렸다. 시내와는 달리 조용한 동네였다. 그녀는 이제 다 왔다며 나를 보고 그만 돌아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갈 생각을 안 하자 그녀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목석(木石)처럼 서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가끔씩 한두 명만 지나갈 뿐 조용했다. 우린 서로 머뭇거리다가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했다.

  “집은 가까우세요?”
  “네. 여기서 조그만 걸어가면 돼요.”
  “집 앞까지 바래다줄게요.”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작별의 인사를 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조그만 그녀의 손이 내 손에 따듯하게 전달되었다. 안타까우면서도 아쉬운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순순히 내 품에 안겼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살 냄새와 머릿결 냄새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자 이성을 마비시켰다. 순간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입술도 반쯤 열려 있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을 맛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의 귀에다 속삭이듯이 말을 하니 감겨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키스를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긴 입맞춤을 한 우리는 헤어지기가 서운한지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배신한 애인을 생각하는지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얼굴을 가슴에 묻고 등을 토닥거려줬다.

  “정말 고마웠어요. ……저 같은 사람 만나서 뭐 해요. ……좋은 사람 만나세요.”

  목이 잠긴 목소리로 말을 한 후,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그녀는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뛰어가는 것같이 보였다.
  그녀의 뒷모습을 본 나는 갑자기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허망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뒤로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 내 어깨를 톡톡 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더 크게 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선영 씨!’ 부르며 뒤로 돌아섰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선영 씨의 얼굴은 어디 간데없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한참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 뭐하니?”
  “아니, 넌…….”
  “이게 친구도 몰라보네. 너 지금 대낮에 잠꼬대 하냐?”

  친구는 자리에 앉으며 의아한 듯 물었다. 친구는 조금 늦는다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내가 안 받아서 문자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휴대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한 통이 왔고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선영 씨가 누구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그녀와 있던 시간이 다 꿈이었다는 것인가?
  친구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이 없이 나는 얼른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그 여자 분은 밝은 미소로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멋진 남자분이 그 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저렇게 예쁘고 참하게 생긴 여자를 누가 싫어하려고’ 하면서 나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나는 기분도 별로 좋지 않아서 블랙으로 커피를 했다. 블랙커피 한 모금 먹으며 씁쓸한 고독을 달래기로 했다. 친구는 내가 블랙으로 먹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야? 너도 블랙으로 먹을 때가 다 있니?”
  “그럼 뭐, 나라고 블랙으로 못 먹으라는 법 있니?”

  나는 볼멘소리로 쏘아댔다.

  “맨날 설탕 두 스푼을 넣는 네가 웬일이니?”

  나는 보통 커피에는 설탕을 두 스푼을 넣고 먹었다. 왜냐하면, 설탕 두 스푼은 사랑을 아는 거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세 스푼은 단것만 좋아하는 거라나 뭐라나.

  친구와 커피숍을 나오면서까지 자꾸 눈길은 그 여자 분에게로 향했다. 그 여자 분은 여전히 뭐가 재미있는지 이야기하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녀와 짧은 만남은 비록 일장춘몽 같은 꿈이라지만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한편의 사랑의 일화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