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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둑이야기 2

이제민 시인 2006. 6. 28. 23:48

나의 바둑이야기 2

 

글. 이제민

 

그렇게 나는 좋은 스승 밑에서 바둑을 배웠으니 날로 향상되어 갔다. 학교 끝나자마자 친구가 같이 놀자는 것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숙제를 내 주는 것을 바둑판 위에 놓으면서 풀었다.
아빠는 나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다양하게 내 주었다. 사활문제는 쉬운 문제는 첫 수에 금방 알겠는데 좀 어려운 문제는 첫 수가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첫 수를 이렇게 놓으면 상대가 이렇게 받으면 그 다음이 잘 안되고 그렇다고 저기다 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아빠는 내가 이렇게 고민하다 바둑판에다가 한 수 한 수 놓아보려고 하면 사활은 눈으로 푸는 거라며 손으로 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생각을 해 보라고 했다.
한참만에 생각해서 풀은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둑 한 판을 이긴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으리라.
그렇게 아빠랑 열심히 노력한 끝에 5학년 때에는 교내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상을 타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시도대회에 추천을 해 주셔서 입상을 하는 쾌거를 올렸다.

바둑은 그렇게 날로 향상되어 가는데 중학생이 되자 학교 공부는 자꾸 떨어졌다. 그 동안 못마땅하게 여긴 엄마가 마침내 불호령을 내리셨다. 바둑을 못 두게 한 것이다. 나는 아빠한테 매달리며 사정을 했다. 하지만 아빠도 엄마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아빠는 바둑으로 인해 엄마와 많이 싸우셨다. 아빠는 바둑을 둘 때는 다른 일이 손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한 번은 엄마가 몹시 아프셔서 기원에 계신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아빠는 바둑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택시 불러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론 아빠는 바둑에 관한 일이라면 엄마한테 무조건 양보하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아빠하고 바둑두는 것도 못하게 하셨는데 아빠가 자기가 이루지 못한 한을 이루고 싶다고 끝내 굽히지 않아 엄마가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공부가 떨어졌으니 더 이상 아빠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로 인해 한 동안 바둑을 두지 못했다. 바둑을 두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공부시간에도 교과서는 바둑판으로 보이고 선생님 얼굴은 바둑알로 보이고 친구들이 불러도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나 대답을 하곤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더니 멍순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토록 열심히 했던 특활활동 바둑부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런 나를 바둑부 친구들만이 위로해 주었다. 요즘 바둑도 잘 안 두고 하니까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몇 번 물어보았지만 난 이유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난 우리 집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싫어했다. 더더욱 아빠는 엄마가 위독해도 바둑을 두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는 말을 어찌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1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자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연합고사가 눈앞에 있어 다른 일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바둑은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기고 잊어버렸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가서 바둑에 대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내 방을 정리하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바둑에 대한 일과가 차곡차곡 쓰여 있었다. 그래서 바둑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1학년 초에 바둑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동아리에 가입하기 전에 아빠하고 바둑을 두면서 생각을 해 뒀었다. 내가 아빠한테 의향을 물어보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이제 다 큰 딸이라면서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내가 아직도 바둑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아빠는 한두 판 둬 보시고는 지금 내 실력이 5급 정도는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빠하고 맞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동아리에 가니 정말 잘 두시는 선배님도 많이 계셨다. 아빠실력과도 비슷한 분도 몇 명되었다. 아빠한테 5점 놓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데 여기서도 5점은 놓아야 했다.
그러나 신입생 중에는 내가 고수로 통했다. 나보다 잘 두는 사람은 3급이 1명, 4급이 2명 그리고 그 다음이 나였다. 물론 여학생 중에는 내가 제일 잘 두었다. 8급이 한 명이 있었는데 실력은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남학생과 어울리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5급 둔다니까 나보다 못 두는 하수(下手)가 '여자가 설마 잘 둬봤자' 하면서 두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의도 없이 무례하게 두는 사람은 가차없이 혼을 내 주었다. 잡을 수 있는 대마는 무조건 잡아 버렸다. 그러면 살리려고 진땀 빼는 표정은 정말이지 호호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상수(上手)분들은 달랐다. 언제나 하수를 얕잡아보지 않고 바둑을 즐겼다. 바둑의 묘미를 만끽하며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여유가 있었다.
아빠의 바둑은 언제나 긴장감이 돌았다. 조그만 틈을 보이면 무조건 날아오는 저격수이었다. 언제나 아빠의 눈은 먹이를 쫓는 매의 눈처럼 섬칫 해 보였다.
내 스승인 아빠의 바둑이 그러하니 나도 은연중에 나타났다. 나와 많이 대국한 선배는 바둑이 너무 매섭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바둑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전체보다는 조그만 부분에서 싸움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싸움으로 전개되어 포석이 무시된 체 판 전체로 흐르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내 바둑은 달랐다고 한다. 초반은 잘 짰는데 중반이 되면 상대방 약점을 너무 노려 긴바둑이 단명국(短命局)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고 한다. 기력(棋力)이 자기보다 하수일 때는 잘 통하지만 상수일 때는 거꾸로 자기가 말려든다는 것이었다. 바둑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시면서 승패(勝敗)에 연연하지 말고 즐기라고 했다.
매번 받는 충고이지만 몸에 밴 습관을 어찌 쉽게 고칠 수 있을까. 초반에는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하지만 중반쯤 싸움이 벌어지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긴장이 되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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