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 249

바람의 말

바람의 말 이제민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당신 산천을 여행하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꽃을 만나 향기를 품고 비를 만나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당신 탐스러운 열매에 얼굴 붉히다가 그 아래 떨어진 나뭇잎 보며 그리움을 앓아가기도 한다. 해가 뜨면 따스함을 맛보고 달이 뜨면 외로움도 느끼며 살아가는 당신 머리 풀어헤치며 흔들리는 갈대처럼 파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갈매기처럼 그렇게 성장해가며 인생을 배워간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가을호

종이컵

종이컵 이제민 예쁘지 않고 품위도 없다지만 마음만큼은 넓고 둥글어요. 목마른 갈증 자판기에서 뽑은 차 한 잔 두 손으로 감싸면 온몸에 따스함이 스며들어 마음마저 여유로워요. 아무 데서나 서서 마실 수 있고 편한 사이 같이 마실 수 있는 차 짧은 만남이지만 빈 종이컵은 꼬기꼬기 구기지 말고 재활용 해주세요.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가을호

외딴 골목길에 선 가로등 외 1편 (한국문학세상 2010년 여름호)

외딴 골목길에 선 가로등 이제민 외딴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 서 있다. 발길이 뜸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 어둠을 밝게 비추는 등불 두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술 한잔 마신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모습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반가이 맞아줄 가족이 있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었다. 낯선 골목길에서 기다림에 지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떠돌이 인생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친구 삼아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여름호 아카시아꽃 이제민 푸르름 더해가는 오월 아카시아 향기 실바람 타고 솔솔 산길은 하얀 꽃 아카시아 향내 맡으며 꿀을 따는 꿀벌 연주하는 나비 눈부신..

외딴 골목길에 선 가로등

외딴 골목길에 선 가로등 이제민 외딴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 서 있다. 발길이 뜸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 어둠을 밝게 비추는 등불 두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술 한잔 마신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모습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반가이 맞아줄 가족이 있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었다. 낯선 골목길에서 기다림에 지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떠돌이 인생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친구 삼아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여름호

보석 비빔밥 외 1편 (한국문학세상 2010년 봄호)

보석 비빔밥 이제민 입맛이 없을 때 양푼에 열무김치, 나물에 계란부침을 넣고 거기에 밥 한 공기 넣어 고추장에 참기름 몇 방울 동동 띄워 비비고 또 비빈다. 입가에 고추장 묻은 밥풀을 묻혀가며 숟가락에 푹 떠서 먹는다. 당신에게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값싼 보석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보석이 뭐 별개냐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 그게 다 보석이지. 매운 것도 꾹 참고 허겁지겁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봄호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제민 하루 일을 끝내고 부담 없는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캬! 좋다.' 반가운 친구들과 첫 잔을 부딪치며 마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석쇠에 올려놓은 삼겹살 온몸을 비틀거리며 오그라들고 자글자..

보석 비빔밥

보석 비빔밥 이제민 입맛이 없을 때 양푼에 열무김치, 나물에 계란부침을 넣고 거기에 밥 한 공기 넣어 고추장에 참기름 몇 방울 동동 띄워 비비고 또 비빈다. 입가에 고추장 묻은 밥풀을 묻혀가며 숟가락에 푹 떠서 먹는다. 당신에게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값싼 보석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보석이 뭐 별개냐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 그게 다 보석이지. 매운 것도 꾹 참고 허겁지겁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0년 봄호

삼겹살에 소주 한잔 (문예운동이 가려 뽑은 국민시집 『우리들의 좋은 詩』2010년 2월)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제민 하루 일을 끝내고 부담 없는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캬! 좋다.' 반가운 친구들과 첫 잔을 부딪치며 마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석쇠에 올려놓은 삼겹살 온몸을 비틀거리며 오그라들고 자글자글 톡톡 소리 내며 익어간다. 고기 굽는 냄새 코끝을 자극하면 또 한 잔의 술잔이 오가고 상추잎에 삼겹살을 얹고 거기에 신김치, 생마늘, 풋고추, 파절이 기호대로 쌈을 싸 입에다 쏙 넣는다. 톡 쏘는 독한 소주 맛이 삼겹살에 스며들어 뒤끝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역시 삼겹살엔 소주 한잔이 제격이야, 그렇지! 다음에 만날 때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 · 특집 문예운동 105호 별책부록 문예운동이 가려 뽑은 국민시집 (약 4백 명의 대표작) 『..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제민 하루 일을 끝내고 부담 없는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캬! 좋다.' 반가운 친구들과 첫 잔을 부딪치며 마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석쇠에 올려놓은 삼겹살 온몸을 비틀거리며 오그라들고 자글자글 톡톡 소리 내며 익어간다. 고기 굽는 냄새 코끝을 자극하면 또 한 잔의 술잔이 오가고 상추잎에 삼겹살을 얹고 거기에 신김치, 생마늘, 풋고추, 파절이 기호대로 쌈을 싸 입에다 쏙 넣는다. 톡 쏘는 독한 소주 맛이 삼겹살에 스며들어 뒤끝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역시 삼겹살엔 소주 한잔이 제격이야, 그렇지! 다음에 만날 때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 · 특집 문예운동 105호 별책부록 문예운동이 가려 뽑은 국민시집 (약 4백 명의 대표작) 『..

소래포구에서 외 1편 (한국문학세상 2009년 겨울호)

소래포구에서 이제민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포구 위 철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간혹 이어지고 철교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개발이 봇물처럼 일어나 바다 물길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시장엔 농어, 전어, 꽃게로 상인들 활기로 넘쳐나고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한 어느 늦여름 토요일 오후 싱싱한 회를 먹으로 온 사람들 즉석에서 이것저것 흥정하고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인다. 바닷물은 점점 들어오고 소금기에 찌든 비린내는 술기운에 녹아들고 개펄에서 먹이를 찾아 먹던 괭이갈매기 힘찬 날갯짓하고 정박했던 고깃배도 출항을 준비한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북적거리던 인파도 떠나고 멀리 보이는 불빛은 고요하기만 한데 횟집에서는 여전히 늦여름의 이야기꽃을 피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