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 249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 3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 3 이제민 네모난 바둑판 361로路의 길 너와 내가 마주 앉아 반상의 여행을 떠난다. 서로 보듬어 주기도 하고 때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겨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게임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지만 반상의 길은 한번 간 길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 나름대로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파도가 치고 폭풍우 몰아칠 때면 임시 숙소에 웅크리고 앉아 고뇌에 잠긴다. 소중한 병정들을 떠나보내며 슬퍼할 겨를이 없이 가야 한다. 재충전해서 다시 길을 가야 한다. 승리를 위하여.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겨울호

소래포구에서

소래포구에서 이제민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포구 위 철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간혹 이어지고 철교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개발이 봇물처럼 일어나 바다 물길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시장엔 농어, 전어, 꽃게로 상인들 활기로 넘쳐나고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한 어느 늦여름 토요일 오후 싱싱한 회를 먹으로 온 사람들 즉석에서 이것저것 흥정하고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인다. 바닷물은 점점 들어오고 소금기에 찌든 비린내는 술기운에 녹아들고 개펄에서 먹이를 찾아 먹던 괭이갈매기 힘찬 날갯짓하고 정박했던 고깃배도 출항을 준비한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북적거리던 인파도 떠나고 멀리 보이는 불빛은 고요하기만 한데 횟집에서는 여전히 늦여름의 이야기꽃을 피운다. ..

슬픈 날에는 외 2편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슬픈 날에는 이제민 슬픈 날에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떠나고 싶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 밤, 혼자라도 좋다. 슬픈 날에는 열차에 몸을 맡긴 채 한없이 달리고 싶다. 긴 의자에 잠시 쉴 수만 있으면 이 밤, 남쪽 끝이라도 좋다. 아무나 만나도 차 한 잔을 건네며 스스럼없는 얘기를 이 밤, 함께 해도 좋다. 짧은 여행이 되더라도 되돌아온 나의 일상엔 큰 이정표로 남았으면 한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자유인 이제민 비가 오면 가슴 속에 묻어 둔 사람 우산을 쓰고 내 집 앞에 서 있네요. 눈이 오면 추억 속에 간직한 사람 눈꽃을 훨훨 날리며 내 집 앞에 서 있고요. 하루쯤 자유인이 되어 비가 오면 함께 우산을 쓰고..

슬픈 날에는

슬픈 날에는 이제민 슬픈 날에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떠나고 싶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 밤, 혼자라도 좋다. 슬픈 날에는 열차에 몸을 맡긴 채 한없이 달리고 싶다. 긴 의자에 잠시 쉴 수만 있으면 이 밤, 남쪽 끝이라도 좋다. 아무나 만나도 차 한 잔을 건네며 스스럼없는 얘기를 이 밤, 함께 해도 좋다. 짧은 여행이 되더라도 되돌아온 나의 일상엔 큰 이정표로 남았으면 한다.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가을호

새벽 오솔길을 걸으며 외 1편 (한국문학세상 2009년 여름호)

새벽 오솔길을 걸으며 이제민 이슬방울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가로등도 잠이 들 무렵 오솔길을 걷는다. 검푸르던 하늘 차츰 밝아 오름에 나무, 꽃, 벌레 기지개를 켠다. 촉촉이 젖은 잎사귀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맑고 신선한 공기 마시며 두 팔 벌려 심호흡을 해본다. 되돌아오는 중에 약수터에 들러 물 한 잔 마시니 가슴이 확 트이는구나.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여름호 바둑이야기 -선의 노래 이제민 1선은 죽음선 나가면 나갈수록 죽고요 비마끝내기 살금살금 상대 진영 짓밟고 위험할 땐 서로 손잡고 연결하고요 2선은 패망선 기면 길수록 망하고요 한 칸 끝내기 야금야금 상대 진영 교란하고 불안할 땐 얼른 가볍게 살아 놓아요 3선은 실리선 늘면 늘수록 안..

바둑이야기 -선의 노래

바둑이야기 -선의 노래 이제민 1선은 죽음선 나가면 나갈수록 죽고요 비마끝내기 살금살금 상대 진영 짓밟고 위험할 땐 서로 손잡고 연결하고요 2선은 패망선 기면 길수록 망하고요 한 칸 끝내기 야금야금 상대 진영 교란하고 불안할 땐 얼른 가볍게 살아 놓아요 3선은 실리선 늘면 늘수록 안정하고요 중심을 잡아 살랑살랑 포근함을 갖고 수비할 땐 좋은 행마로 살아 놓아요 4선은 세력선 두면 둘수록 커지고요 우주로 나가 팔랑팔랑 희망을 품고 공격할 땐 크게 중앙에서 모자씌워요 오선지에 그린 악보처럼 높고 낮은 선 서로 사이좋다가 싸우기도 하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있는 포근하고 희망의 노래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여름호

새벽 오솔길을 걸으며

새벽 오솔길을 걸으며 이제민 이슬방울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가로등도 잠이 들 무렵 오솔길을 걷는다. 검푸르던 하늘 차츰 밝아 오름에 나무, 꽃, 벌레 기지개를 켠다. 촉촉이 젖은 잎사귀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맑고 신선한 공기 마시며 두 팔 벌려 심호흡을 해본다. 되돌아오는 중에 약수터에 들러 물 한 잔 마시니 가슴이 확 트이는구나.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9년 여름호

어느 소작농의 눈물 외2편 (한국문학세상 2008년 겨울호)

어느 소작농의 눈물 이제민 한 시골마을 가난한 농민이 살고 있었다. 농사가 잘돼 풍년이 들면 수매收買를 다 바치지 못하고 흉년이 드는 해에는 소출이 적어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자기 땅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났지만 소작농小作農은 애써 농사를 잘 지어봐도 지주地主에 임대료를 주고 나면 손에 쥔 소득은 몇 푼 안 되었다. 자식들은 커가고 비료대금 등 농자잿값은 점점 오르고 정부에서 지급하는 쌀 소득보전 직불금*마저 지주에 빼앗기고 마는 현실 부수입을 올리려고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길러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탓에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파동에 생활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융자를 받은 빚만 늘어갔다. "아빠,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한 거야? 언제 가난을 면할 수 있어?" 자식의 말에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