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243

귀의 마술

귀의 마술 이제민 귀에는 마술이 있어요 흑백의 싸움에 수가 적어도 잡히지 않고 몇 수 안되는 돌이 은근히 탄력이 있어요 궁도가 넓어도 죽을 수 있고 궁도가 좁아도 쉽게 안 죽는 귀 귀에는 변화가 있어요 기본 정석을 알아도 기본 사활을 알아도 싶게 적응하지 못해요 내 집같이 크지만 상수의 횡포에 빈껍데기만 남고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하수에요 귀에는 상수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요 귀의 마술을 귀의 변화를 알면 실력은 소리 없이 늘어요. ------------------------ ·주간 『바둑361』 기념호(1996년 10월)

겨울 바다 · 1, 장군 멍군

겨울 바다 · 1 이제민 사랑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방황의 뒤안길 슬픈 그림자를 잊은 채 겨울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요히 잠들 뿐 벗이 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이 불면 먹구름이 몰려와 성난 파도에 휩싸여 수면 위로 떠오르는 슬픈 사연들 지난 세월을 수평선 너머로 날려 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현실 속의 또 다른 삶을 발견한다. ------------------------ ·1996년 8월 『하이텔바둑동』 창간호 ·월간 누리 시문학 2006년 12월호 장군 멍군 이제민 무더운 여름날 동네 어른들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아침부터 장기판이 벌어졌네. 포로 진지를 정비하고 차로 정찰을 시켜 병졸이 적진을 향해 진격하네. 모시옷에 부채 들고 더위도 잊은 채 '박가야 마장..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이제민 반상 위에 두개의 작은 병정들 내 마음의 고뇌가 시작되네 손끝마다 힘이 넘쳐 사색은 시작되네 한 병정이 내 마음을 뒤흔들면 내 마음은 점점 하늘로 용솟음치네 그때마다 하나 둘 고통스런 병정들 고민과 아픔이 시작되네 머릿속엔 허전한 빈 공간뿐 아무리 찾아봐도 부족한 병정들 만회하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어 최선을 다할 뿐…… 병정들은 가로 세로 줄지어 아름답게 서있지만 이 마음은 후회뿐 할 말은 많아도 고개만 숙일 뿐이구나. ------------------------ ·월간 『바둑세계』 1990 2월호 「독자의 난」 ·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제2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