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표詩】/발표詩

바둑지에 실린 시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외 6편

이제민 시인 2007. 9. 10. 22:56

 

바둑지에 실린 시 (7편)
 
월간 『바둑세계』 1990년 2월호 독자의 난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하이텔바둑동』 회지 창간호 (1996년 8월) 「장군 멍군」
『하이텔바둑동』 회지 창간호 (1996년 8월) 「겨울 바다」
주간 『바둑 361』 기념호 (1996년 10월) 「귀의 마술」
월간 『바둑』 1997년 6월호 「돌소리 글소리」란 「패싸움」
『하이텔바둑동』 회지 2호 (1997년 12월) 「들꽃」
『하이텔바둑동』 회지 2호 (1997년 12월) 편집후기 「수담으로 즐기는 바둑동」


내 마음속의 작은 병정들

이제민

반상 위에 두개의 작은 병정들
내 마음의 고뇌가 시작되네
손끝마다 힘이 넘쳐
사색은 시작되네.

한 병정이 내 마음을 뒤흔들면
내 마음은 점점 하늘로 용솟음치네
그때마다 하나 둘 고통스런 병정들
고민과 아픔이 시작되네.

머릿속엔 허전한 빈 공간뿐
아무리 찾아봐도 부족한 병정들
만회하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어
최선을 다할 뿐…….

병정들은 가로 세로 줄지어
아름답게 서있지만
이 마음은 후회뿐
할 말은 많아도 고개만 숙일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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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바둑세계』 1990년 2월호 「독자의 난」
·계간 『문학세상』 2005년 제2호 제2회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https://love2poem.tistory.com/5240590


장군 멍군

이제민

무더운 여름날 동네 어른들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아침부터 장기판이 벌어졌네.

포로 진지를 정비하고
차로 정찰을 시켜
병졸이 적진을 향해 진격하네.

모시옷에 부채 들고
더위도 잊은 채
'박가야 마장 받아라.'
'이놈아 포장 받아' 수담 속에

어느덧 훈수꾼들이 몰려와
'장이야' 하면
'멍이야' 응수하며
춘추전국의 열기기 깊어만 가네.

일진일퇴의 상황 속에
초나라 항우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고목나무 매미울음이
위급한 전황을 알려주고

더위에 지쳐 헐떡이는 삽사리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먹고
곰방대의 담배 연기에
하늘 저편엔 뭉게구름이 일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곁들이는 세월 이야기.

산 너머 저편에
한줄기 소나기가 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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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바둑동』 창간호 (1996년 8월)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28


겨울 바다 · 1

이제민

사랑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방황의 뒤안길
슬픈 그림자를 잊은 채
겨울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요히 잠들 뿐
벗이 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이 불면
먹구름이 몰려와
성난 파도에 휩싸여
수면 위로 떠오르는
슬픈 사연들

지난 세월을
수평선 너머로 날려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현실 속의 또 다른
삶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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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바둑동』 회지 창간호 (1996년 8월)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28


귀의 마술

이제민

귀에는 마술이 있어요.
흑백의 싸움에
수가 적어도 잡히지 않고
몇 수 안되는 돌이
은근히 탄력이 있어요.

궁도가 넓어도 죽을 수 있고
궁도가 좁아도 쉽게 안 죽는 귀

귀에는 변화가 있어요.
기본 정석을 알아도
기본 사활을 알아도
싶게 적응하지 못해요.

내 집같이 크지만
상수의 횡포에
빈껍데기만 남고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하수에요.

귀에는 상수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요.
귀의 마술을
귀의 변화를 알면
실력은 소리 없이 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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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바둑361』 기념호 (1996년 10월)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48


패싸움

이제민

상수의 말을 거의 다 잡았다고
기쁨의 탄식을 할 때
교묘히 패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 말이 다 살았다고
방심한 틈을 타
시간이 흐르면
살며시 조여 오죠.

패가 나면 긴장이 고조되어
판은 어지럽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팻감들

팻감을 잘못 써
어느덧 대마는 죽고
상수의 말을 잡았을 땐
그 기쁨 누가 알랴?

패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패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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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바둑』 1997년 6월호 「돌소리 글소리」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61


들꽃

이제민

봄바람 불면
이름 모를 들꽃
바람아저씨보고
인사해요, "안녕" 라고

바람아저씨 "방긋"
손짓하며 지나가요.
남들보다
예쁘지도, 향기도 없지만
들꽃은
모나지 않게 꼿꼿이 살아가요.

저 멀리 혼자
떠다니는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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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바둑동』 2호 (1997년 12월)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76


수담으로 즐기는 바둑동

이제민

수담으로 즐기는 하이텔 바둑동
나그네처럼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나를
정들게 만들어 머물게 하고
인생의 참 맛을 바둑을 통하여
알게 하는 바둑동이 여기 있으리라.

바둑 한 수에 피곤도 잊은 채,
손끝에서 나오는 돌 소리에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고

수담 후엔
따뜻한 만남이 휴게실처럼 아늑한
우리들의 대화의 공간

여기에
낭만이 있고 기쁨이 가득한
하이텔 바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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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바둑동』2호 1997년 12월 「편집후기」
*https://love2poem.tistory.com/5240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