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294

코스모스 길 외 2편 (문예지평 2007년 가을 3호)

·문예지평 2007년 가을 3호 코스모스 길 외 2편 코스모스 길 이제민 파아란 하늘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길 양쪽으로 늘어선 오솔길 코스모스 길 가냘픈 자태를 뽐내듯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고 고추잠자리 살며시 앉으면 빨강, 분홍, 하양으로 인사하는 코스모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하며 한잎 한잎 떨어뜨려 이긴 사람이 이마에 꿀밤을 주며 가을을 수놓는 아이들 해는 서산 넘어 노을이 지는데 동심에 젖은 아이들 집에 돌아갈 줄 모르고 동네 어귀에선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노을에 걸쳤네. ------------------------ ·문예지평 2007년 가을 3호 해바라기 1 이제민 내 마음 전할 수 있다면 담장 너머로 바라만 보는 해바라기가 되어도 좋다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활짝..

할머니의 옛이야기

할머니의 옛이야기 이제민 깊어 가는 여름밤 TV도 없던 시절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는다. 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둘러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듣는 할머니의 이야기 대문 밖 논두렁에는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함께 어우러져 장단을 맞추고 손자 손녀 모기 물릴까 봐 부채질을 해가며 이야기는 시작되고 마당 모퉁이 더위에 지친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아장아장 걸어와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잠이 와 눈을 껌벅껌벅하면 할머니는 무딘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외양간 소도, 강아지도 밤하늘에 떠있는 별님도 새근새근 잠이 든다. 한여름밤이면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가 늘 귓전을 맴돈다. ------------------------ ·월간 누리 시문학 2007년 7월호

반딧불이

반딧불이 이제민 어둠이 몰려오면 꽁무니에서 빛나는 반딧불 반짝반짝 별처럼 누구를 위해서 반짝거리는 걸까? 전기가 없던 시절 호롱불이 꺼지면 반딧불 하나로 방안을 밝혀주는 고마운 님 어둠은 새벽을 향해 줄달음치고 피로가 온몸에 몰려오면 빛은 스스로 사라지고 제 생명을 다하는 순결한 사랑 짧은 일생 볼품없는 빛이지만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반딧불이. ------------------------ ·계간 『한국문학세상』 2007년 여름호

천장

천장 이제민 어둠이 무르익자 나의 하루가 상영 중인 영화로 천장에서 무심코 걸어 나온다. 영화배우처럼 오늘도 주인공이 되어 연기에 열중이다. 연기는 초보지만 어떤 역을 줘도 나는 항상 주인공이었다. 자원봉사인 조연들, 너절한 소품들 벗 삼아 매일 한 컷씩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의 빈 허무뿐이었다. 홍보가 안 되어서, 아님 연기가 부족했는지 매번 관객동원에는 실패했지만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영화는 절정에 달하고 배우, 관객 모두 분위기에 심취하자 천장은 예견된 듯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마치, 다음 컷을 준비하려고. ------------------------ ·계간 『한국문학세상』..

천장 외1편 (한국문학세상 2007년 여름호)

천장 이제민 어둠이 무르익자 나의 하루가 상영 중인 영화로 천장에서 무심코 걸어 나온다. 영화배우처럼 오늘도 주인공이 되어 연기에 열중이다. 연기는 초보지만 어떤 역을 줘도 나는 항상 주인공이었다. 자원봉사인 조연들, 너절한 소품들 벗 삼아 매일 한 컷씩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의 빈 허무뿐이었다. 홍보가 안 되어서, 아님 연기가 부족했는지 매번 관객동원에는 실패했지만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영화는 절정에 달하고 배우, 관객 모두 분위기에 심취하자 천장은 예견된 듯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마치, 다음 컷을 준비하려고. ------------------------ ·계간 『한국문학세상』..

거울에 비친 모습 외1편 (월간 누리 시문학 2007년 6월호)

·월간 누리 시문학 2007년 6월호 거울에 비친 모습 외1편 거울에 비친 모습 이제민 거울에 비친 모습 내가 아니다. 너를 만날 땐 거울 앞에 서서 본 모습 감추려 화장하고 치장하지만 마음만은 감출 수 없다. 너를 향한 마음 드려내기 쑥스러워 감추는 내가 야속하지만 내 마음도 모르는 채 거울 속 너는 보조개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고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 내가 아니다 진정 나일 수 없다. ------------------------ ·월간 누리 시문학 2007년 6월호 시 쓰는 날에는 이제민 시가 잘 써지는 날에는 클래식 음악과 한 잔의 커피가 있다. 클래식은 리듬을 부드럽게 만들고 한 잔의 커피는 은은한 향기를 뿜어낸다. 시가 잘 안 써지는 날에도 클래식 음악과 한 잔의 커피가 있다. 클래식은 마음의..